항일독립투쟁의 선구적인 인물 올해(2022년)는 예관(?觀) 신규식(申圭植, 1880~1922) 선생 서거 100주년이다. 우리 독립운동사의 빛나는 성좌 중에 선구적인 독특한 경력을 가진 인물임에도 일반에게는 그리 친숙한 인물이 아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낸 김규식(金奎植) 선생과 혼동하기도 하고, 일반에 흔히 쓰이지 않는 한자인 아호 예관의 ‘예(?)’ 자에서부터 관련된 책장을 덮기도 한다. 신규식 선생의 생애를 압축하는 진면목은 이 아호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눈을 흘겨 본다”는 뜻의 ‘예관’이라 호를 짓게 된 사연은 이렇다. 대한제국의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한 후 시위대 시절 을사늑약이 강제되었다. 선생은 의병을 일으키려다 실패하여 자살을 기도했다가 생명을 건졌으나 오른쪽 눈의 시신경이 마비되고 말았다. 이후 항일구국전선에 나서면서 “애꾸눈으로 왜놈을 흘겨본다”는 의지를 담아 ‘예관’이라 호를 지었다. 그리고 여기서 한 치의 뒤틀림도 없는 항일투쟁으로 42년의 짧은 삶을 바쳤다. 예관 선생이 나라를 빼앗기고 망명지에서 지은 『한국혼(韓國魂)』은 해방 이래 학생들에게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나라가 망한 이듬해(1911년) 31세가 된 예관은 다수의 독립운동가들이 택하는 만주나 연해주가 아닌 상하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의 터전을 닦으면서 1912년부터 『한국혼』의 집필을 시작한다. 첫 대목부터가 나라 잃은 동포들의 마음을 울렁이게 한다. 백두산의 쓸쓸한 바람에 하늘도 땅도 시름에 젖고 푸른 파도가 굽이치니 거북과 용이 일어나서 춤을 춘다. 어둡고 긴 밤은 언제 그치려나. 사나운 비바람만 휘몰아친다. 5천 년 역사를 가진 조국은 짓밟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2천만 백성은 떨어져 노예가 되었으니, 아아! 슬프다. 우리나라는 망했도다. 우리들은 기어이 망국의 백성이 되고 말 것인가? 개탄은 어느 누구나 하기 쉽다. 예관은 망국의 원인과 국치의 사유 그리고 국권회복의 방략을 찾고자 하여 이 책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