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석문과 목간의 연구는 고고학개설에 나와 고고학 전공자가 담당해야 된다. 그래야 철두철미한 실증주의에 입각한 이들 자료를 연구할 수가 있다. 고고학은 유물과 유적에 근거한 실증주의가 기본이다. 광개토태왕비(414년), 중원고구려비(449년 이후), 집안고구려비(491년 이후), 미륵사 서탑 사리봉안기(579년), 포항중성리비(441년), 영일냉수리비(443년), 울진봉평비(524년), 울주 천전리서석 원명(525년)과 추명(539년), 단양적성비(545년 직전), 창녕비(561년), 북한산비(561~568년), 마운령비(568년), 황초령비(568년)의 어느 자료도 문헌에는 언급이 없다. 문헌을 무시하고 금석문을 연구하는 것도 문제지만, 문헌에만 의지해 금석문을 연구하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금석문을 연구할 때, 금석문 자체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마친 후에 문헌을 통한 검토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