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사변 120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재조명 낭인이 살해범이라는 통설을 뒤엎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일본 군대와 낭인들이 경복궁 담을 넘어 들어가 왕비를 참혹하게 살해하고 불태웠다. 이른바 을미사변이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범인이 일본인이라는 사실은 당시 여러 증언자의 기록과...
제1장 여우사냥
무장 미우라의 서울 부임
‘왕후 폐제廢除’에 나선 군 지휘관들
난입전야
‘왕비 살해’ 긴급 타전
제2장 참극의 현장, 건청궁
서양인이 목격한 참극
건청궁의 비명소리
제3장 누가 명성왕후를 죽였는가
‘왕비 살해자는 우리 육군소위’
결정적 단서 ‘육군사관이 먼저 칼로’
제4장 검증 ‘시해범 미야모토 소위’
의혹 하나, 왜 우치다는 살해범을 은폐했는가?
의혹 둘, 왜 미야모토를 현장에 투입했는가?
의혹 셋, 왜 우편취급 기사, 사진사는 급거 귀국했는가?
의혹 넷, 왜 미야모토 조사는 서둘러 끝냈는가?
의혹 다섯, 왜 미야모토는 타이완 헌병대로 갔는가?
의혹 여섯, 왜 전사자인데도 야스쿠니 명부엔 누락됐는가?
제5장 을미사변, 그 후
낭인들, “너도나도 왕비를 하수”
천황, “해야 할 때는 해야 하는가”
제6장 명성황후는 누구인가
외국인이 본 명성황후
명성황후의 친필 한글편지
에필로그_홍릉에서
맺는 말
참고문헌
부록
자료 1 「우치다 보고서」(전문 번역)
자료 2 「한국왕비살해사건 군법회의 판결서」(전문 번역)
자료 3 「우치다 사신私信」(전문 번역)